11. 다음 대화에 등장하는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① 강감찬이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② 사신 저고여가 귀국길에 피살되었다.
③별무반을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④ 거란을 배척하여 만부교 사건이 일어났다.
⑤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정답:
1, 배점: 3점
고려의 현종에 대한 내용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고려 현종만큼 현재 저평가된 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려
현종은 태조 왕건의 직계 후손이었으나, 목종 즉위 이후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사로 삼고자
한 천추태후의 경계를 사서 수차례 죽을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후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시해당하고 김치양과
천추태후 일파가 제거된 후 현종은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발생한 거란의 2차 침입 때 개경을 떠나 나주까지 피난을 가는 등 위기를 겪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이후 거란의 3차 침입을 강감찬의 귀주대첩 등의 활약으로 막아내며 고려의 멸망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합니다.
현종 = 거란의 2차, 3차 침입, 귀주대첩
으로 알고 계셔도 무방하지만, 최근 거란의 침입 관련해서 거의 출제되지 않던 양규의 흥화진 분전, 현종 등 출제 패턴이 다양해 지고 있어서, 이 부분도 주의깊게 들여다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① 강감찬이 귀주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강감찬의 귀주대첩은 현종때의 거란 3차 침입때의 승리입니다. 정답입니다. 귀주대첩의 승리로 고려는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으며, 거란은 쇠퇴하였고, 거란의 공백을 여진(금나라)가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② 사신 저고여가 귀국길에 피살되었다.
저고여는 몽골의 사신이었습니다. 몽골은 고려에 무례한 태도로 지나치게 과한 공물을 요구해 왔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공물을 요구하러 왔던 저고여가 피살됩니다. 이후 몽골이 이를 구실로 침공하며 몽골의 1차 침입이 시작됩니다
③별무반을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거란의 쇠퇴 이후 여진이 성장하며, 이에 대한 방비를 다지기 위해 윤관의 주도 아래에 별무반을 창설합니다.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며 동북 9성을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여진의
간청과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동북 9성을 반환하게 됩니다(사실은
갈라수 전투에서의 큰 패배도 원인 중 하나이긴 했습니다)
④ 거란을 배척하여 만부교 사건이 일어났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건국 이후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처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발해 역시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민족인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하며, 거란의 사신이 보내온 낙타를 만부교에 매달아 굶겨 죽이는 만부교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고려의 역사 인식과 발해와의 동질감을 보여준 일련의 사건들은 발해 역시 우리 민족의 역사의 한 부분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들 중 하나로 작용합니다.
⑤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고려 초기 성종때 발생한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는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벌여, 거란을 물러가게 하고 강동 6주를 확보하였습니다.
12. (가) 시대의 정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① ㄱ, ㄴ
② ㄱ, ㄷ
③ㄴ, ㄷ
④ ㄴ, ㄹ
⑤ ㄷ, ㄹ
정답:
4, 배점: 2점
시대별 빈민 구제 기관에 대해 묻는 문제입니다. 지문의 구제도감은 고려 시대에 설치된 기구로, 전염병 퇴치, 병자 치료 등의 기능을 수행한 기관입니다. 각 시대별 빈민 구제
제도, 기관, 서적에 대해 알고 있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고구려 : 진대법
고려 : 구제도감, 혜민국, 동서대비원, 제위보, 상평창(~조선)
조선: 환곡제, 사창제, 향약집성방, 구황촬요
ㄱ. 구황촬요는
조선 명종때 간행되었습니다.
ㄴ. 동서대비원은
고려시대때 설치되었습니다. '개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고려를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ㄷ. 사창절목은
고종 3년 호조에서 정해졌으며 이를 토대로 사창제를 시행하였습니다. 이는
환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의 일환이었습니다.
ㄹ. 제위보는 기금을
모아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는 고려시대의 사회보장기관이었습니다.
이 중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정답은 ㄴ, ㄹ입니다.
13.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②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난을 일으켰다.
③이제현이 만권당에서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④ 묘청 등이 중심이 되어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⑤ 최충헌이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하였다.
정답:
3, 배점: 2점
고려의 태자가 쿠빌라이를 배알하고 스스로 왔다는 대목에서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고종 때의 태자(원종)가 원나라의 쿠빌라이로부터 '몽골은 고려의 풍속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함께 원나라와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약속합니다.
이 사건 이후에 전개된 일이므로 원 간섭기 시대의 일을 고르면 됩니다.
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되었다.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된 것은 고려 초기 광종때입니다. 시기상 한참 전입니다
②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난을 일으켰다.
김보당의 난은 무신정권 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김보당의 난은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인 정중부와 이의방을 물리치고 의종을 복위시키고자 하였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김보당의 난은 진압당하고 의종은 이의방이 보낸 자객 이의민에 의해 시해당합니다.
고려 무신정권 시대에 일어난 난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문신의 난 - 무신
정권에 대한 반대: 김보당의 난(이의민이 의종 시해) / 조위총의 난
민중의 난 - 신분해방, 농민처우 개선: 만적의 난(최충헌의
노비) / 망이, 망소이의 난(공주 명학소) / 김사미, 효심의
난
③이제현이 만권당에서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만권당은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의 수도 대도(베이징)에 세운 독서당입니다. 이제현
등 고려의 학자들은 만권당에서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하였습니다. 이제현과 그의 문하생 목은 이색은 고려에
성리학을 전래하였으며,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성리학자들은 정몽주, 정도전
등 고려 말 신진 사대부의 사상적 토대가 됩니다
④ 묘청 등이 중심이 되어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고려 중기 문벌 귀족 시대때 발생하였습니다. 고려 인종때, 묘청은 금나라에 사대를 주장하는 문벌 귀족을 비판하며
서경으로 천도하고 금나라를 정벌하여 사대주의를 배격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묘청을 중심으로 한
서경파의 서경 천도 운동이 실패하자, 묘청은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지만,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파에 의해 진압당하게 됩니다. 이후 단재 신채호는 이 서경 천도
운동을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시기상으로는 원간섭기보다 이전입니다
⑤ 최충헌이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하였다.
최충헌은 고려 무신 정권의 집권자로, 최씨무신정권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최충헌은 명종때, 정변을 일으켜 이의민 일당을 숙청하고 왕에게 봉사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신정권때이므로 시기상 이전입니다.
14.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①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정답:
2, 배점: 2점
난이도가 꽤 높은 문제였습니다. 배흘림 기둥에 주심포 양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좁힌 후, 석등(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통일신라시대 석등)을 통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①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다포양식의 건축물입니다
②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에 건축된, 주심포 양식의 배흘림기둥 건물입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역시 함께 알아두시면 더 좋습니다
③예산 수덕사 대웅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역시 고려시대에 세워진 주심포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때 세워졌으며, '제작연도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④ 구례 화엄사 각황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건물로, 다포양식의 건축물입니다
⑤ 안동 봉정사 극락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주심포 양식의 배흘림 기둥으로 축조되었습니다.
15. 다음 자료에 나타난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① 책문 후시를 통한 교역이 활발하였다.
②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설치하였다.
③감자, 고구마 등이 구황 작물로 재배되었다.
④ 경시서의 관리들이 수도의 시전을 감독하였다.
⑤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나타났다.
정답:
4, 배점: 1점
주전도감은 고려 숙종때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세워진 관청입니다. 고려 숙종인 주전도감에서 해동통보와 은병(활구)를 주조하여 유통하고자 하였으나,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경제상황에 대해 고르는 문제입니다. 다만, 다른 선지들은 조선 후기의 경제상에 대한 문제에 자주 출제되는 선지이므로 숙지해 두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① 책문 후시를 통한 교역이 활발하였다.
책문 후시는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민간 교역이 이루어지던 곳이었습니다.
② 송상이 전국 각지에 송방을 설치하였다.
송상 역시 조선 후기에 활동한 사상(私商)들 중 하나로, 송악(개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인입니다. 송상은 홍삼의 대량 생산법을 개발하여 홍삼 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며 전국 각지에 송방을 설치하고, 사개치부법이라는 자체적인 복식 부기 회계법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③감자, 고구마 등이 구황 작물로 재배되었다.
감자, 고구마 등은
조선 후기에 전래되어 구황작물로서 많이 재배되었습니다
④ 경시서의 관리들이 수도의 시전을 감독하였다.
경시서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시전을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고려, 조선 시대 모두 해당되므로 정답입니다. 고려와 조선의 경제 상황에 대해 묻는 문제에 자주 출제되는 선지이므로 꼭 알아두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⑤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가 나타났다.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덕대는 조선 후기 설점수세제를 통해
민간의 광산 개발이 허용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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