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밑줄 그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화왕계를 지어 국왕에게 바쳤다.
② 천태종을 개창하여 불교 통합에 힘썼다.
③ 정혜결사를 통해 불교 개혁에 앞장섰다.
④ 심성의 도야를 강조한 유불일치설을 제창하였다.
⑤ 불교 관련 설화를 중심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정답:
3, 배점: 2점
‘불일보조국사'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는 보조국사 지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돈오점수 역시 지눌이 우리나라 선종에 정착시킨 참선 수행법으로, '어느
순간 대번에 깨닫더라도 점진적으로 수행함을 멈추지 않는다'는 수행법입니다. 지눌에 대한 중요한 암기 포인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보조국사 지눌: 정혜쌍수(선종 중심의 교종 통합 운동), 돈오점수를 강조, 수선사(지금의 송광사) 결사, 조계종 창시
① 화왕계를 지어 국왕에게 바쳤다.
화왕계는 통일신라 신문왕때의 인물인 설총이 신문왕에게 바친
단편의 글입니다. 꽃을 의인화하여 왕의 올바른 도리를 완곡하게 제시한 글입니다
② 천태종을 개창하여 불교 통합에 힘썼다.
해동 천태종은 고려시대의 의천에 의해 개창되었습니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아들로서, 교종 중심의 선종 통합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교관겸수를 강조하고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여 불교 통합에 힘썼습니다
③ 정혜결사를 통해 불교 개혁에 앞장섰다.
‘정혜'는 정(선정, 禪定, 선종)과 혜(지혜, 智慧, 교종) 모두를 아울러 선종 중심의 교종 통합을 추구한 지눌의 핵심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정혜쌍수(정,혜 모두 추구)의
뜻을 함께한 이들을 모아 정혜결사를 결성했습니다.
④ 심성의 도야를 강조한 유불일치설을 제창하였다.
유불일치설은 고려 말 혜심이 제창하였습니다. 혜심은 지눌의 제자로, 유교와 불교의 이치가 하나로 통한다는 유불일치설을
제창하였습니다
⑤ 불교 관련 설화를 중심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삼국유사는 고려의 승려 일연이 저술하였으며, 불교 관련 설화를 중심으로 단군의 고조선 건국 설화 등을 수록하였습니다
17. 밑줄 그은 '이
책'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②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③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④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⑤ 유교 사관에 입각하여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정답:
3, 배점: 3점
고려 후기의 학자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지었습니다. 제왕운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더불어 고조선의 시조 단군의 건국 설화를 수록하였습니다
①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남북국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입니다
② 사초와 시정기를 바탕으로 편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의 재위 시절에 작성된
사초와 시정기는 춘추관에 보관됩니다. 그리고 왕의 사후 이를 모아 춘추관 관원들이 참여한 실록청에서
조선왕조실록으로 편찬합니다
③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 설화는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답입니다
④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고려 말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입니다
⑤ 유교 사관에 입각하여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는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습니다. 또한 괴력난신(초자연적인 신비)을
배제하는 유교사관에 입각하였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설화 등 건국 설화가 수록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18. (가) ~ (마)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 (가) -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제안하다.
② (나) -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다.
③ (다) -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에 힘쓰다.
④ (라) - 경제문감을
저술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다.
⑤ (마) -성학십도에서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하다.
정답:
2, 배점: 3점
고려의 성리학자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보기들이 모두 소거법으로
소거하기에 평이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각 보기들은 유학자 관련 문제에
빈출되는 보기이므로 잘 알아두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① (가) -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제안하다.
봉사 10조는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집권자인 최충헌이 올린 상소입니다. 안향은 고려 말의 유학자로, 성리학을 전래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조선 시대 성리학의 시조격으로 추앙받습니다. 조선시대에 최초로 사액(왕으로부터 편액을 하사받음)된 서원인 영주의 소수서원 역시 안향을 배향(제사를 지냄)하는 서원이었습니다
② (나) -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다.
이제현은 원 간섭기 시대의 유학자로, 원의 수도인 대도(베이징)에
세워진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성리학 전래에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정답입니다
③ (다) -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에 힘쓰다.
9재학당은 고려 초기 문종때의 유학자인 최충이 설립한 사학(私學) 중 하나였습니다. 문헌공도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문헌공도와 비슷한 사학들이 생겨나며 개경의 사학 12도라 불리었습니다. 이색은 고려 말(여말선초)의
성리학자로, 이제현의 제자입니다. 그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인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은
역성 혁명에 참여하였습니다.
④ (라) - 경제문감을
저술하고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다.
경제문감은 정도전이 자신의
'조선경국전'을 보완하여 저술한 책입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참여하였으며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하였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키다가 선죽교에서 순절한 인물입니다
⑤ (마) -성학십도에서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하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이 군주의 도를 알기 쉽게 도식으로 설명하여
임금(선조)에게 올린 글입니다.
19.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① 주자소가 설치되어 계미자가 주조되었다.
②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③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대전회통이 편찬되었다.
④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한 계해약조가 체결되었다.
⑤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이 시행되었다.
정답:
5, 배점: 2점
‘계유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계유정난을 일으킨 세조를 유추해
낼 수 있으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황보인은 계유정난 당시 김종서와 함께 피살된 인물입니다.
세조는 계유정난 이후 세종때의 여러 제도를 폐지하거나 이전으로
되돌렸습니다. 1) 세종때의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태종때의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켰습니다. 2) 세종때 세워진 집현전을 폐지하였습니다.(이후
성종때 홍문관으로 부활)
① 주자소가 설치되어 계미자가 주조되었다.
주자소를 설치한 왕은 조선 태종입니다. 태종때에는 계미자가 주조되었으며, 세종때 이를 개선한 갑인자가 주조되었습니다.
②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무오사화는 연산군때 발생하였습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세조의 계유정난을 에둘러 비판)을 빌미로, 훈구파가 사림파를 공격하며 발생하였으며, 그 결과 김종직은 부관참시 당하였고,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 등 수많은
사림파가 숙청당했습니다
③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대전회통이 편찬되었다.
대전회통은 흥선대원군때 편찬된 법전으로, 정조때 편찬된 대전통편을 증보한 법전입니다
④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한 계해약조가 체결되었다.
계해약조는 조선 세종때 일본과 체결되었습니다. 계해약조로 부산포, 염포, 제포
등 3개의 왜관이 개설되어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하였지만, 삼포왜란과
임진왜란을 거치며 폐쇄되었다가, 광해군때의 기유약조로 부산포(이후
초량)왜관 한 곳이 다시 열립니다
⑤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이 시행되었다.
세조는 과전법에서 세습을 가능하도록 하던 수신전과 휼양전을
폐지하고, 오직 현직 관리만이 수조권을 가질 수 있는 직전법을 시행하였습니다. 이후 성종때에 이르러 수조권을 주는 대신, 국가에서 대신 세를 징수하고
관리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관수관급제를 시행합니다
20.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비국 등록이라고도 불렸다.
② 국왕의 비서 기관에서 작성하였다.
③ 세가, 지, 열전 등으로
구성되었다.
④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유래하였다.
정답:
2, 배점: 1점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 등을 기록한 책은 승정원 일기입니다. 승정원 일기를 작성한 승정원은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과 같이 국왕의 비서 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며 왕명의 출납
등을 담당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과 함께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① 비국 등록이라고도 불렸다.
비변사는 비국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비변사는 삼포왜란을 계기로 설치된 비상시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며 상설기구화 되었습니다. 이후 비변사는 세도정치시기의 세도가들의 최고 권력 기구로 변질되었으며
흥선대원군때 폐지됩니다. 비변사등록은 비변사에서 이루어지는 회의의 내용을 기록한 일종의 속기록입니다.
② 국왕의 비서 기관에서 작성하였다.
승정원은 국왕의 비서 기관으로서 왕명의 출납 등을 담당하였으며
승정원일기를 작성했습니다
③ 세가, 지, 열전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가, 지, 열전 등의 구성은 기전체 역사 서술방식입니다. 기전체로 서술된 대표적인
역사서는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입니다
④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역시 김부식의 삼국사기입니다
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쓴 일기에서 유래하였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썼으며 이후 왕들이 기록한 일기는 일성록으로, 일성록 역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51회 다른 문제
1~5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15.html
6~10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610.html
11~15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1115.html
16~20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1620.html
21~25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2125.html
26~30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2630.html
31~35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3135.html
36~40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3640.html
41~45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4145.html
46~50번
https://odap-history.blogspot.com/2021/04/51-4650.html
댓글 없음:
댓글 쓰기